-이철성 [식탁 위의 얼굴들]中


여기 이 벤치에 앉아

겨울 냄새를 맡고 있는 너와 나는

순간 스친 이 냄새에

말을 잃고 깊이 넓어져만 가는 너와 나는

너의 손을 잡지 못하는 나와

내 깊은 곳으로 흘러들어오는 너는

바람처럼 스산하고

공기처럼 맑아

떨어지며 정지하여

영원히 정지해버린 너는

그림처럼 아름답고

기억처럼 참담하여

내가 너의 아버지이기를 바라고

네가 나의 어머니이기를 바라는 너는

여기 추운 나무들이 서 있는 벤치에 앉아

희망한다.

한 아이가 다른 한 아이의 친구가 되지 말기를

한 여자가 한 남자의 애인이 되지 말기를

그래서

맑은 하늘과 비어 있는 거리

멈춰 선 버스와 흘러가는 시간 사이로

너의 두 눈은 그림처럼 아름다워

겨울 냄새를 풍기고

겨울의 하늘 속으로 멀어져

내가 빠져든 우물,

거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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