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때의 어두운 길이 내 앞에 펼쳐져 있다.

이제까지만 해도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잊지 말아요" 속삭이던 사람.

오늘은 벌써 불어대는 바람뿐

목동의 소리와

해맑은 샘가의 훤칠한 잣나무뿐

단 한마디로 모든것을 끝내었으면 좋겠다.
'사랑해'
솔직하고 간단명료하잖아?
동장군은 다가오는 봄을 맞이해서 다시한번 전열을 제정비 자신이 아직 쇠퇴 하지 않았음을
과시하고 있다 곳곳에 내리는 눈발 살을 애는 칼바람은 시절은 3월이지만 아직 세상은 겨울의 지배
아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봄은 여기저기 겨울의 억압을 피해 꽃을 피우고
나무에 물이 오르게 하고 세상을 조용히 푸르름으로 물들이고 있다.
겨울 그의 부질없는 저항은 곧 마무리 될것이다.  그는 몰락할 것이다.

죽음은 피어오르는 생명력을 이길수 없고
생명은 죽음을 이길 수 없다..
몰래 훔쳐본 6년전 그녀의 사진...
오래전에 남겨진 당신의 글들..당신과의 소통..
단 한번도 사귄적은 없다만 마음속 지워지지 않고 지워지지 않는
흔적만 남아있다..
9000km의 거리를 단 440km 줄였으나
물리적인 거리의 줄어듬은 숫자의 줄음일뿐
마음의 거리는 이미 이 세상을 벗어나 있다..
누가 그랬던가? 남자와 여자사이는 바다보다 강이 더 깊고 넓은 것이라고..

꿈을 꾸고 있는 그녀...
꿈을 꾸고 있는 나....
이미 엊갈린 방향..

내 의지대로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나..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것 같은 그녀..
하지만 그러기엔 난 너무나 겁이 많고 너무나 우유부단 하며
그녀 또한 잊혀진 기억속의 사람을 현실로 끌어내고 싶어 하진 않으리..
그래서 나는 그저 피아노 속에 비춰진 그녀의 모습만을
그림자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바보스러운 마음 한구석 조그마한 울림은
일생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그녀를 다시 보았으면
다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하고 외치고 있다...

프라이브룩...


 

내가 그동안 이 세상에 한 일이 있다면

소낙비같이 허둥대며 뛰어다닌 일

그리하여 세상의 바짓가랑이에 흙탕물 튀게 한 일

씨발, 세상의 입에서 욕 튀어나오게 한 일

쓰레기 봉투로도 써먹지 못하고

물 한 동이 퍼 담을 수 없는 몸, 그 무게 불린 일


병산서원 만대루 마룻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와이셔츠 단추 다섯 개를 풀자.

곧바로 반성된다.


때때로 울컥, 가슴을 치미는 것 때문에

흐르는 강물 위에 돌을 던지는 시절은 갔다.


시절은 갔다, 라고 쓸 때

그때가 바야흐로 마흔 살이다.

바람이 겨드랑이 털을 가지고 놀게 내버려두고

꾸역꾸역 나한테 명함 건넨 자들의 이름을 모두

삭제하고 싶다.


나에게는

나에게는 이제 외로운 일 좀 있어도 좋겠다.


-안도현

'예술'은 죽음과 싸우고 있다. 불멸성을 획득하기 위해,예술가는 헛된 오만에 적당한 희망에 무릎을 꿇는다. '예술'은 인생에서 멀리 떨어지고 그것에 무지해야한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일시적이며 죽어야 하는 것이므로 '예술'이 멈추고 있는 사이에 인생은 지나가버리고 결국은 사라지고 만다. 인생이 시도하는 것을
(헛되이 시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것은,
그 삶을 완성하기 위해 뒤로 물러서거나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술'은 실현해 버린다.
'예술'은 신성한 것에 도달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알베르 까뮈
'예술과 인생의 사이 ' 中

결국 사랑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니?

그건 아무 것도 아닌것이야..

단순히 어린아이가 사탕을 먹지 못해 안달하는것과 다름이 없어

다른 사탕이 나타나면 이전의 사탕은 잊어 버리고 새로운 사탕에게

가게 되어 있지

사랑의 양념과 같은 요소만 가지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맛있는 고기를 먹고 전체 요리를 먹어야 하는 거야

그건 바로 마음을 주는 것이지...

그 마음을 바로 받아줄 사람을 보는 안목을 길러..

그게 중요한 것이야.


오래전의 대화중에서..

-이철성 [식탁 위의 얼굴들]中


여기 이 벤치에 앉아

겨울 냄새를 맡고 있는 너와 나는

순간 스친 이 냄새에

말을 잃고 깊이 넓어져만 가는 너와 나는

너의 손을 잡지 못하는 나와

내 깊은 곳으로 흘러들어오는 너는

바람처럼 스산하고

공기처럼 맑아

떨어지며 정지하여

영원히 정지해버린 너는

그림처럼 아름답고

기억처럼 참담하여

내가 너의 아버지이기를 바라고

네가 나의 어머니이기를 바라는 너는

여기 추운 나무들이 서 있는 벤치에 앉아

희망한다.

한 아이가 다른 한 아이의 친구가 되지 말기를

한 여자가 한 남자의 애인이 되지 말기를

그래서

맑은 하늘과 비어 있는 거리

멈춰 선 버스와 흘러가는 시간 사이로

너의 두 눈은 그림처럼 아름다워

겨울 냄새를 풍기고

겨울의 하늘 속으로 멀어져

내가 빠져든 우물,

거울이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속 가능한' 육체와 영혼의 결합은 없다. 공간을 뛰어넘는 사랑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저 난폭한 시간 앞에서 막막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다만 구체적인 것은 현존하는 두 사람의 육체일 뿐.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사랑을 갈망할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두 존재의 결합이라는 연애시의 욕망은, 사실은 그 어긋남에 대한 암묵적인 승인을 전제한다.

그러니 모든 연애시는 '사랑은 가능하지 않다' 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으로써 연애의 주체는 사랑이라는 상처 속에서 실존적 동일성을 부여받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사랑을 방해하는 제도적 현실에 대한 경멸조차도,

그 사랑의 근원적인 불가능성을 은폐하는 알리바이일지도 모른다.
상처의 뼈아픈 깊이를 통해서, 연애에 처한 자는 주체성을 얻는다.
소통의 지속성이 아니라 부재의 지속성이, 사랑의 벗어날 수 없는 중독성을 보장한다.

그러니까 그 모든 부재와 상실과 환멸이 역설적으로

사랑을 증거한다.


-이광호

예술이나 미적 지각을 경험과 결부시키는 것이 그것들의 중요성과 위엄의 저하를 의미한다는 가정으로 치닫는 것은 무지의 소치에 불과하다.

경험이 진실로 경험인 한 경험은 활력으로 고양되는 것이다.

경험은 개인적인 감정과 감각 안에 갇혀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세계와의 활발하고 민첩한 교제를 의미한다.

그리하여 최고의 경험은 자아와,대상과 사건의 세계 사이의 완전한 상호 침투를 의미한다.

그것은 변덕과 무질서에빠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정체가 아닌, 율동적이고 발전적인 안정의 유일한 증거를  제공한다.

경험은 한 생명체가 사물의 세계 내에서 투쟁하고 성취함으로써 실현하는 것으로,예술의 맹아이다. 경험은 초보적인 형식에서조차 미적 경험이라는 유쾌한 지각에 대한 전망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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