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20,21은 함브룩에서 보내었다..
역시 대도시답게 반홉도 크고 높은 빌딩도 많더라..
거대한 엘베강에는 컨테이너선들이 들어서있고..
검푸른 숲안에 마을이 들어서 있는 좋은곳...
선생의 집은 블랑케네제 근처의 엘브슈하우제 부자동내이다..
정원도 넓고 저택들도 많고..
레슨을 20,21  이틀을 받았는데 역시 대가는 핵심만을 가르친다.. 군더더기가 없다.
21일 레슨에서 트로씽겐으로 가라는 제의를 받았다..
완전시골이지만 훌륭한 학생들도 많고 좋은 선생님도 있고 곧 자기가 그쪽의 교수로 간다고..
한달에 세번 레슨을 받을 수 있을거라고..
집값도 싸고....
아무래도 좋다.. 배울 수만 있다면...
나도 안다 지금의 나로선 모든 도전이 힘들다는것을
그러나 도전이 어렵다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더욱더 바보같은 짓이다.
선생이 내게 요구한것 충분히 해낼 수 있다..
그와 인연이 닿았다는 사실만으로도 3월에 그에게 한번더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간 연습을 한다고 했지만
자신과 너무나 타협을 하면서 연습을 하지 않았나라고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얼마나 자신에게 혹독하게 채찍질을 했는지..
얼마나 자신에게 더 앞으로 나가게 독려했는지...
돌이켜 보니 부끄럽기 그지 없다..

오늘은 뷔르츠브룩의 볼프강 빕플러 교수님 앞에서 포어 슈필을 했다.
역시 좋은 교수님... 아무것도 모름에서 오는 미숙함에도 친절하게 대해 주심에
마음속 깊이 감사드린다.
이곳에서 공부 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노력해야겠다.

이제 1주일 너무나 모르는것이 많고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하나하나 깨져가면서 배우기엔 내 나이가 너무 많다..이제 알아서 해야할 나이인데...
20일 다시만나는 휄쩰 선생님 앞에서는 좀더 잘 할 수 있기를 다짐하며..

3악장...트럼펫엔 콘라딘 그로스도 보인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

슈만의 4대의 호른을 위한 협주곡
아...슈테판 도어,데일 클레벤져 ㅠ.ㅠ
어떻게 하면 이사람들의 발톱의 때만큼이라도 연주 할 수 있을까?

가정 교향곡 칼뵘 옹의 지휘...
이거 오케스트라 곡중에서 가장 높은 음이 나온다 High E !!!!!
C도 내기 힘든데 E라니!!
리햐르트 슈트라우스........아무리 아버지가 뮌헨 궁정의 호른 주자였다고 해도;;;

아 쩐다..
피즈카옹이 비엔나 호른으로 연주한 지그프리트 호른콜...
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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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슬린 페리어 1912년 4월 22일 영국 북부의 랑카샤이어 마을에서 태어났다.
집안의 제정 형편이 좋지 않음에도 그녀의 어머니는 케슬린을 계속 공부를 시킬것을 원했다..
그녀는 아주 일찍 피아노에 매혹 되었다. 그녀는 대학에 들어갈수 있을것 같은
장래가 매우 밝은 학생이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집안 사정은 넉넉치 못했고 그녀는 14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전화교환원 일을 시작하게 된다.
피아니스트로 그녀는 수많은 지역 축제에 참가했고 수상하였다.
1935년 결혼한 페리어 부부는 칼리슬로 이사했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칼리슬 페스티발의 성악
부문에 도전해보기를 권유하고 1937년 피아노와  성악 부문에서 입상한다. 그일로 그녀는
성악가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그것은 그녀의 화려한 인생의 전환이 된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시기한듯 데뷔한뒤 막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때 유방암에 걸리게 되고 1951년 첫 수술을 받은뒤 2년 후에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의 일화중에 유명한 것은 말러 대지의 노래를 발터와 함께 연주하는 도중 맨 마지막
곡인 이별에서 Ewig 를 부르다 감정에 복받쳐 흐느껴 버린 것이다..
페리어는 발터에게 프로페셔널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해서 죄송하다라고 말했고
발터는 그녀에게 "페리어양 누구라도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이라면 그곳에서 눈물 지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발터의 대답은 기억이 가물해서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브루노 발터의 회고록에 보면 이 일화가 나와았습니다. 사랑과 죽음의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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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으로 가득찬 영혼-브루노 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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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휄쩰은 튀빙겐에서 태어났고 슈트트가르트 음대에서 호른과 비올라를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지휘와 호른을 전공 하였다.
그의 나이 21살때 학생으로 슈트트가르트/로이틀링겐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연주자가 되었으며 뒤따라 밤베르크 심포니와 뮌헨 필하모닉의 같은 자리에 앉게 된다.1973년 부터 2000년 까지 휄쩰은 데트몰트 음악대학의 호른과 실내악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많은 수의 국제콩쿨 입상자

그중에는 라도반 블라코비치(모차르테움 교수) 브루노 슈나이더(프라이 부룩 교수) 에릭 터윌리거,에사 타파니(프랑크프루트 교수예정)그리고 알레시오 알레그리니가 있다.

작년 7월 이분과 2주일을 함께 했다..
곧 떠나는 유학에서 다시 이 선생님과 공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1일 함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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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 대해 쓸 것이 너무 많아서 펜을 들 수가 없다. 1년반 전의 일 이후 내 삶은 끝없이 이어지는 경험들로 넘치고 있어서 나는 그 내용을 말로 설명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렇게 끔찍한 위기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내가 보는 모든 사물은 새로운 빛 속에 있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생생히 살아 있음을 느낀다. 파우스트의 마지막 장면처럼 내가 갑자기 새로운 육신을 갖게 된다고 해도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삶에 목말라 있으며 ‘존재하는 습관’이 그 어느 때보다도 달콤하게 느껴진다. 삶의 광폭한 소용돌이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우리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존재들에 대해 단 한 순간이라도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하지만 나는 이 글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있다. 왜냐하면 바로 다음 순간, 가령 내가 이 방을 나가는 그 순간에 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서 생각하는 그 무엇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 안에서 행동하는 그 무엇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신기해라, 내가 음악을 들을 때, 심지어 지휘할 때, 나는 이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을 완벽하게, 명료하게, 확실하게 들을 수 있다. 아니, 나는 이러한 물음들이 애초부터 없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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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러의 교향곡 6번을 처음 지휘한 것은 1975년이었고, 그 이후로 이 곡을 말러 교향곡 중 가장 자주 지휘해왔다. 이 곡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곡에 담겨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시각에 크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곡은 희망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심원하면서도 본능적인 투쟁에 대한 느낌을 자극한다. 모든 것이 헛될 뿐이라는 감정은 80분간의 처절한 연소(燃燒)에 불을 붙이고, 연주가 끝나면 작품도 나도 모두 탈진상태에 빠지게 된다. -제임스 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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